겨울 대성리

쩌모 2013. 9. 19. 22:59

 

 

   겨울 대성리

 

 

바람보다 매서운 눈초리

묵정밭 서릿발 같은 손톱

기러기도 날지 않는 하늘을

한나절을 바라보던 녀석은

무거운 입을 열었다

그래 잘 가

 

정월 초사흘

너를 보내던 강둑에 앉아

차디찬 소주를 흘려 넣는다

이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던

네 말을 그 때는 몰랐지

1997년 그 때는 정말 몰랐지

 

또 잊고 대충은 잃고

꿈마저 희미해진 하루를 시작해도

언 강 밑에는 새 물이 흐르는 것을

우리는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

여기에서 새 희망을 또다시 배운다는 것은

또다른 절망을 품어야 하기에

 

강물로 바다로 그러다가 구름으로 폭풍우로

몇천만 번을 돌고 헤매도

결국은 다 네 품속인 것을

 

듬성듬성 마른 풀처럼

말라 비틀어진 털이 쓸쓸한

녀석의 팔은 이젠

주사바늘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

하두 꽂아댄 마약 때문에

핏줄은 강물처럼 얼어있었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