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
냉동소시지구이에 관한 이야기
쩌모
2013. 9. 20. 09:29
냉동소시지구이에 관한 이야기
어느 나들이에서 철판으로 만든 그릴에 번개탄을 피우고
몇십 명이 빙 둘러 냉동소시지를 구워먹었다. 소시지 속이
물렁거리는 고급소시지였다. 그릴은 작고 배는 고프고 고개
디밀 틈도 없이 젓가락만 드나들며 허겁지겁 구웠다.
겉이 시커멓게 타서 한입 물었더니 속은 아직 차디차고
내용물이 몰캉거렸다. 그러나 더 구울 수가 없었다. 구울수
록 불길이 세어서 겉만 탔다. 그 틈에 끼어서 우적우적 날소
시지를 씹으며 지난 여인이 떠오른 건 필연이었다.
홀로홀로 가슴 속까지 얼음이 얼도록 냉동된 소시지가 되
었던 우리 둘은 만나자마자 가슴보다 눈이 먼저 눈보다 머
리가 먼저 뜨거워져 불길이 센지도 모르고 시커멓게 타도록
이리저리 딩굴렀다. 구울수록 몸만 달았지 속은 몰캉거리며
얼음이 버적거렸다. 그래도 우리는 맛있다고 입주변이 새카
매지도록 날소시지를 먹었고 소화도 되기 전에 배탈이 나고
말았다. 이 소시지는 고급이라 괜찮을까? 그때 그 소시지는
원래 불량이었을꺼야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