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
순대국
쩌모
2013. 9. 28. 07:56
순대국
그애가 순대국을 먹었을 때 하늘을 날 것
같았다. 이 하늘 아래 순대국을 좋아하는
천사도 있구나. 이 사이에 가뭇가뭇 낀
들깨가루도 흑진주처럼 보였다. 그날 난
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짚어쓰고 킥킥 웃었다.
살려면 죽을 듯이 살고, 죽으려면 살았을
때보다 더 빛나라. 살아도 살지 못하고 죽어도
죽지 못하는 발에 채이는 삶 또는 죽음 속에서
허기진 나는 순대국이 좋았다. 치사한 말 접어
두고 양 많고 기름지고 영양가 많고 맛 좋으면
됐지 굳이 나를 보는 너를 염두에 두거나 내가
순대국을 먹었다는 치욕을 너도 모르는데 나
스스로 떠올릴 필요 있나.
다시는 순대국 안 먹어. 내가 순대국을 먹나 봐라.
순대국만 빼고 나머지는 다 먹어. 더 이뻐지고
낭랑하고 목에 힘을 주며 톡톡 튀고 마치 클레오
파트라처럼 색조화장을 하며 내 머리카락 위에서
군림하는 그녀가 배가 고프다면서도 음식거리를
다 지날 때까지 뭐 먹을지를 고르지 못했을 때
나는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짚어쓰고 펑펑 울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