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
어우르기 아니면 어루러기
쩌모
2013. 10. 8. 07:17
어우르기 아니면 어루러기
머릿니는 머리가 고향이다
햇빛을 많이 받아 흑인처럼 시커멓다
(몸)니는 몸이 고향이다
해빛을 못 봐서 백인처럼 하얗다
한 인간의 피를 똑같은 방법으로 빨아먹으면서
두 이는 서로를 흉본다
머릿니가 어쩌다 몸속으로 떨어지면 그 머릿니
머리로 기어올라가려 하지 않고
땅으로 떨어져 자살을 한다
(몸)니 목덜미로 해서 머리로 올라갈 수 있으련만
손톱 사이에서 터질망정 절대로 머리로 안 간다
두 이를 도리없이 길러야 하는 나는
둘이 한데 어우러지기를 바라지만
둘은 죽어도 어우르기를 하지 않는다
그 놈들 등쌀에 나만 골탕을 먹는다
내 몸만 어루러기가 생긴다
가려워 피가 나도록 득득 긁는다
내 피를 먹고 자란 내 두 종류의 이
나일까 나 아닐까
내 피가 저렇게 가르친 것은 아닐까
그나 저나 죄 많은 내 청춘이다
* 어우르기: 다른 것들이 한데 어울려 같이 사는 것
* 어루러기: 얼룩덜룩해지는 피부병
* 너를 사랑한 죄 많은 내 청춘-- 어우르기 혹은 어루러기